자력갱생

  어떠한 일이든지 문제가 자주 발생할 때에는 반드시 그 문제의 원인부터 찾아 해결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일들을 미루어 앞으로의 추이를 관망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 남다른 혜안으로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만약 임시방편으로 조치한다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한다면, 끝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593년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한 뒤, 이순신은 군대를 재정비하여 2월에는 웅포해전을 치렀다. 그리고 삼도(충청·전라·경상)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수륙병진작전으로 내륙에 숨은 왜군들을 토벌했다. 4월 남하한 왜군들은 진주성전투를 치룬 뒤 바다와 육지를 통해 호남에 진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호남은 곡창지대로서 군량보급의 요충지이다. 6월 22일 2차 진주성전투가 발생하자 이순신은 원균, 이억기와 함께 거제도에서 견내량을 향해 오는 왜선 10척을 물리쳤다. 견내량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후 이순신은 일본군의 침입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좌수영에서 왜군의 경유지인 한산도로 진영을 옮기기를 계획하고, 드디어 7월 15일 이순신은 진영을 한산도 두을포(豆乙浦)의 의항(蟻項)으로 옮겼다. 의항은 한산도 서쪽 두억 항구에 있다. 이순신이 해전 때 왜적들이 이 항구에 들어오면 궁지에 몰려 개미처럼 기어오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 이순신은 한산도의 가을정취 속에서 떠오르는 감회를 《난중일기》에 적었다.

 가을 기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산란해지고 秋氣入海 客懷撩亂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獨坐篷下 心緖極煩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맑고 시원해 月入船舷 神氣淸冷

 잠도 이루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구나 寢不能寐 鷄已鳴矣

                                           -계사년 7월 15일(《난중일기》)

그리고 이튿날 현덕승(玄德升)에게 “호남은 국가의 울타리이니 만약 호남이 없다면 곧 국가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어제 한산도에 나아가 진을 치어 바닷길을 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라는 내용을 적어 편지를 보냈다.

   8월 15일 삼도의 네 수사[이순신·이억기·원균·정걸]와 휘하 장수들이 한산도 진영에 집결하였다. 이 때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서 실제 군사를 총괄했는데, 바로 삼도의 수군을 관장하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것이다. 이때 한산도에 통제영이 설치되었고, 1597년 2월(감옥에 가기 전)까지 3년 7개월 동안 이곳을 관장했다.

  한산도는 배를 감출 수 있는 곳이고, 왜선이 호남을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는 경로였다. 이순신은 전쟁에 유리한 이곳을 왜적을 제압할 수 있는 해상의 요새로 판단하고 해상전략기지를 구축한 것인데, 이때부터 통제영이 행정관청으로서 운영되었다. 한산도의 철통같은 방어로 호남으로 진입하기 위해 이곳을 통과하려는 왜선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조선수군은 해상의 제해권(制海權)을 확보게 되었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된 계사년 8월 15일은 계사년의 추석날로서 작전참모들이 모두 모인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이 날을 《주역》으로 풀면, 본괘는 수풍정水風井괘이고 변해간 괘는 지풍승地風升괘이다. 체호괘인 태금☱의 도움을 받은 용괘인 감수☵가 체괘인 손목☴을 도와주니 괘기가 왕성하다. 이를 풀면 바다 연안의 생산품이 선비에게 공급되는 상이다. 강한 손목(巽木)이 이화(離火)를 도와주니, 남방의 자원이 넉넉하다. 손목이 변괘인 곤토(坤土☷)를 극하니 나무가 뿌리를 길게 뻗고 잘 자라는 상이다.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둔전을 경영하고, 자력갱생의 노력으로 거기서 얻은 생산품을 교역하여 곡식 수만 석을 비축함으로써 마침내 막강한 진영을 이루게 되었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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