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어떤 일이든지 처음 시작할 때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철저한 계획과 구상을 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의 먹은 마음을 초심(初心)이라고 한다. 이 초심은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일찍이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 관철되어 있다[吾道一以貫之].”고 하였는데(《논어》〈이인〉), 그 하나란 절대 불멸의 진리로서 인(仁)을 말한다. 이 인은 배려와 사랑의 의미로서 인간사회에서 필요한 최고의 덕목이다.

  이 인은 도덕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 즉, 도덕심, 은혜의 마음이라고도 한다. 도덕을 중시하는 문명 사회에서는 항상 도덕을 지향하는 초심이 인간사회의 원리로 작용했다. 반면 물질을 중시하는 자본사회에서는 이익을 추구하는 초심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고 여건이 달라져도 도덕을 지향하는 초심은 항상 잃지 말아야 한다. 문명사회일수록 이것이 항상 인간사회의 밑바탕이 되주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뛰어난 전략가로서 전쟁에서 변화무쌍한 묘책을 내고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한 잠재적인 역량을 발휘하기까지 그의 내면에는 그만의 한결같은 초심이 있었다. 물론 전쟁에 임해서는 국난극복을 다짐하며 오직 유사무이(惟死無貳, 죽음만이 있고 다른 건 없다)한 자세로 임했지만, 일상에서는 도리와 은혜, 예의를 중시하는 지극히 인격수양자다운 모습으로 사람을 대했다.

  예로, 전란 중에 군율을 어긴 부하들에게는 반드시 군법을 적용하여 장형(杖刑)을 내리거나 목을 베어 효시(梟示)를 단행하는 등 군사의 지휘를 매우 엄하게 하였다. 그만큼 국운이 위급한 존망지추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엄한 성격을 보유한 장수가 때로는 물에 적셔 상대의 마음을 감화시키듯이 사랑과 동정을 베풀기도 했다. 젊은 시절 함경도 건원보(乾原堡) 권관(權管, 종9품)으로 있었을 때 변방을 수비하는 병사가 부친의 부음을 받고도 가난한 형편에 달려가지 못하는 사정을 듣고, 그를 동정하여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을 내주었다. 전쟁 중 추위에 떠는 부하에게 옷을 벗어주기도 하고, 항복해 온 일본인들에게 놀이를 허용하기도 했다.(《난중일기》병신7월13일) 이러한 사례를 통해 이순신에게 남다른 동정심과 측은지심, 그리고 대범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순신은 1593년 6월 26일 2차 원균과 이억기와 함께 견내량 해전을 치루고 난 뒤 진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긴 다음날 인척인 현덕승(玄德升)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평소에 입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난리 중에도 옛 정의를 잊지 않고 멀리서 위문편지와 함께 각종 물품을 보내시니, 모두 진중의 진귀한 물건으로 매우 감사합니다.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에야 전쟁을 끝마치고 평소 종유(從遊)하던 회포를 실컷 풀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쓰려하니 슬픈 마음만이 간절할 뿐입니다.
                                   -이순신의 《서간첩》 계사년 7월 16일 -

   이순신은 전쟁 중에도 옛정을 잊지 않고 멀리서 물품과 위문편지를 보내준 현덕승의 성의가 매우 고마웠다. 하루빨리 전쟁을 마치고 예전처럼 전쟁이 없는 평온한 때에 서로 만나서 회포를 풀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담았다. 비록 만날 수 없는 전쟁 상황이었지만, 전란 중에도 동경하는 사람에 대한 옛정을 잊지 않고 예의를 표했다. 이러한 은혜에 보답하는 한결같은 초심이 있었기에 장수의 책임과 도리를 더욱 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연구가(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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